인간은 어떤 것에든 쉽게 빠져들어 사로잡힌다.
소셜 미디어 중독에 대한 위태로운 단면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더니, 얼마되지 않아 우리는 AI 챗봇과의 대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소식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그저 외로운 사람들의 도피처라거나 심약한 사람들의 나약한 의존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조짐이 심상치 않다.
'훈도(訓導)'는 두 세대를 걸쳐서도 여전히 유령처럼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온다는게 후대인의 눈으로는 어떤 삶일지 짐작조차 안되지만, 그들이 식민지 세계의 질서와 길들여저버린 지배자의 세계관을 여전히 중개하고 지켜내는 구세계의 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똑똑히 살펴봐야 한다.
인간은 점점 알고리즘에 익숙해져가고 알고리즘의 방식으로 생각한다
인간의 종말은 인간 스스로 알고리즘이 되어가려는 욕망에 의해 초래될지 모른다. 핵전쟁이나 바이러스 감염, 기후 변화 같은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효율을 택하며 뉴럴 칩을 이식하고, 인공 바이오 장기를 다는 방식으로 말이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 사람다움에 대한 성찰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절대적 명제를 이상으로 걸었던 시저가 혁명을 함께한 코바의 손을 놓아야만 했을 때, 그의 고뇌와 분노, 갈등과 좌절감은 그 깊은 눈빛 보다 어두운 인간 본성의 깊은 바닥을 그대로 비추어준다.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절대적 명제를 이상으로 걸었던 시저가 혁명을 함께한 코바의 손을 놓아야만 했을 때, 그의 고뇌와 분노, 갈등과 좌절감은 그 깊은 눈빛 보다 어두운 인간 본성의 깊은 바닥을 그대로 비추어준다.
전략을 조언하는 신하를 모사라고 부른다. 삼국지에는 수 많은 모사, 즉 전략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전략과 함께 운명을 함께 한다. 그들이 세운 전략의 틀거리를 오늘날의 용어로 보면 "패러다임"이라고 할수 있다. 제갈량의 삼국정립은 그의 등장과 함께 시작하고,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 노숙이 주유에게 제갈량을 소개하는 이 장면에서 삼국지 속의
숭고한 패배라는 것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그 누구의 믿음도 얻어내지 못했다. 까닭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내게 물음이 부족했다. 달리 무엇을 탓할 수 있을까? 힘없는 자의 처절한 싸움과 그 처절한 패배... 내게 남은 싸움의 방식은, 그저 싸움에 물러서지 않는 것 뿐이다. 그뿐이다. 그 것 뿐이다. 아름답고 숭고한 패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