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사이트는 쉬지 않고 어딘가 알게모르게 고장이 난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거나, 얼마간의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며 언젠가 고쳐지길 기다리는 식이다. 아예 접속 장애가 난다면야 누군가 팔을 걷어붙이고 손을 보려하겠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소소한 오류와 에러는 매일매일 마주치는 생활쓰레기처럼 간주되어 무시된다. 복잡하고 거대한 생태계로 자라난 이상, 웹 사이트가 존재하는 방식도 이전과는 사뭇다른 생애주기를 갖기도 한다. 수
다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거나, 얼마간의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며 언젠가 고쳐지길 기다리는 식이다. 아예 접속 장애가 난다면야 누군가 팔을 걷어붙이고 손을 보려하겠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소소한 오류와 에러는 매일매일 마주치는 생활쓰레기처럼 간주되어 무시된다. 복잡하고 거대한 생태계로 자라난 이상, 웹 사이트가 존재하는 방식도 이전과는 사뭇다른 생애주기를 갖기도 한다. 수
워드프레스를 쓰게 된지가 2007년부터니 거의 20년이 다되어가는 것 같은데, 이제는 이 느리고 고집불통인 편집 시스템과 작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고집처럼 붙들고 이리저리 애를 써봤지만, 이제는 훌륭한 기능에 비해 형편없는 사용성에 대해 스스로 납득을 할수 없는 지경이다.
인간관계는 늘 어렵고 마음을 흐트리는 문제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고통이 가슴에 사무치듯, 만나고 싶지않은 사람을 대면하는 괴로움이 분노와 좌절을 선사하기도 한다.
회계의 언어였던 적자는 부도덕, 무능력, 안일함과 같은 윤리적 의미망을 갖춰입고 우리 앞에 등장했다. 적자는 위험하고, 해로운, 경고의 의미로 확산되어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잣대가 우리를 판정하고 지적질을 하고 나선게?
이 시대를 살아온다는게 후대인의 눈으로는 어떤 삶일지 짐작조차 안되지만, 그들이 식민지 세계의 질서와 길들여저버린 지배자의 세계관을 여전히 중개하고 지켜내는 구세계의 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똑똑히 살펴봐야 한다.
인간의 종말은 인간 스스로 알고리즘이 되어가려는 욕망에 의해 초래될지 모른다. 핵전쟁이나 바이러스 감염, 기후 변화 같은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효율을 택하며 뉴럴 칩을 이식하고, 인공 바이오 장기를 다는 방식으로 말이다.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절대적 명제를 이상으로 걸었던 시저가 혁명을 함께한 코바의 손을 놓아야만 했을 때, 그의 고뇌와 분노, 갈등과 좌절감은 그 깊은 눈빛 보다 어두운 인간 본성의 깊은 바닥을 그대로 비추어준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거나, 얼마간의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며 언젠가 고쳐지길 기다리는 식이다. 아예 접속 장애가 난다면야 누군가 팔을 걷어붙이고 손을 보려하겠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소소한 오류와 에러는 매일매일 마주치는 생활쓰레기처럼 간주되어 무시된다. 복잡하고 거대한 생태계로 자라난 이상, 웹 사이트가 존재하는 방식도 이전과는 사뭇다른 생애주기를 갖기도 한다. 수
워드프레스를 쓰게 된지가 2007년부터니 거의 20년이 다되어가는 것 같은데, 이제는 이 느리고 고집불통인 편집 시스템과 작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고집처럼 붙들고 이리저리 애를 써봤지만, 이제는 훌륭한 기능에 비해 형편없는 사용성에 대해 스스로 납득을 할수 없는 지경이다.
인간관계는 늘 어렵고 마음을 흐트리는 문제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고통이 가슴에 사무치듯, 만나고 싶지않은 사람을 대면하는 괴로움이 분노와 좌절을 선사하기도 한다.
회계의 언어였던 적자는 부도덕, 무능력, 안일함과 같은 윤리적 의미망을 갖춰입고 우리 앞에 등장했다. 적자는 위험하고, 해로운, 경고의 의미로 확산되어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잣대가 우리를 판정하고 지적질을 하고 나선게?
이 시대를 살아온다는게 후대인의 눈으로는 어떤 삶일지 짐작조차 안되지만, 그들이 식민지 세계의 질서와 길들여저버린 지배자의 세계관을 여전히 중개하고 지켜내는 구세계의 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똑똑히 살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