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떤 것에든 쉽게 빠져들어 사로잡힌다.
소셜 미디어 중독에 대한 위태로운 단면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더니, 얼마되지 않아 우리는 AI 챗봇과의 대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소식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그저 외로운 사람들의 도피처라거나 심약한 사람들의 나약한 의존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조짐이 심상치 않다.
'훈도(訓導)'는 두 세대를 걸쳐서도 여전히 유령처럼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온다는게 후대인의 눈으로는 어떤 삶일지 짐작조차 안되지만, 그들이 식민지 세계의 질서와 길들여저버린 지배자의 세계관을 여전히 중개하고 지켜내는 구세계의 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똑똑히 살펴봐야 한다.
인간은 점점 알고리즘에 익숙해져가고 알고리즘의 방식으로 생각한다
인간의 종말은 인간 스스로 알고리즘이 되어가려는 욕망에 의해 초래될지 모른다. 핵전쟁이나 바이러스 감염, 기후 변화 같은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효율을 택하며 뉴럴 칩을 이식하고, 인공 바이오 장기를 다는 방식으로 말이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 사람다움에 대한 성찰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절대적 명제를 이상으로 걸었던 시저가 혁명을 함께한 코바의 손을 놓아야만 했을 때, 그의 고뇌와 분노, 갈등과 좌절감은 그 깊은 눈빛 보다 어두운 인간 본성의 깊은 바닥을 그대로 비추어준다.
회계의 언어였던 적자는 부도덕, 무능력, 안일함과 같은 윤리적 의미망을 갖춰입고 우리 앞에 등장했다. 적자는 위험하고, 해로운, 경고의 의미로 확산되어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잣대가 우리를 판정하고 지적질을 하고 나선게?
이 시대를 살아온다는게 후대인의 눈으로는 어떤 삶일지 짐작조차 안되지만, 그들이 식민지 세계의 질서와 길들여저버린 지배자의 세계관을 여전히 중개하고 지켜내는 구세계의 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똑똑히 살펴봐야 한다.
인간의 종말은 인간 스스로 알고리즘이 되어가려는 욕망에 의해 초래될지 모른다. 핵전쟁이나 바이러스 감염, 기후 변화 같은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효율을 택하며 뉴럴 칩을 이식하고, 인공 바이오 장기를 다는 방식으로 말이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라고 한다. 하지만 같은 말을 쓴다고 정말 소통이 될까? 생각이 다른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 그 말이 달라서, 이해받지 못한다.
첫 문장의 마침표를 찍고, 그는 마침내 홀가분한 얼굴로 새 삶의 첫 발자국을 디딜수 있었다. 그를 붙잡고 있던 단어들이 허물을 벗는 뱀처럼 그에게서 쏟아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