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赤字)의 의미에 대한 생각
회계의 언어였던 적자는 부도덕, 무능력, 안일함과 같은 윤리적 의미망을 갖춰입고 우리 앞에 등장했다. 적자는 위험하고, 해로운, 경고의 의미로 확산되어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잣대가 우리를 판정하고 지적질을 하고 나선게?
회계의 언어였던 적자는 부도덕, 무능력, 안일함과 같은 윤리적 의미망을 갖춰입고 우리 앞에 등장했다. 적자는 위험하고, 해로운, 경고의 의미로 확산되어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잣대가 우리를 판정하고 지적질을 하고 나선게?
붉은 글씨로 표시한다는 의미의 이 단어는, 자본주의가 번성하면서 ‘손해’라는 의미를 띈 윤리적 어휘로 탈바꿈하게 된다. 적자는 위험하고, 해로운, 경고의 의미로 확산되어갔다. 무능하다라거나 무책임하다, 망가지고 있고, 죽음을 눈 앞에 둔 그런 혐오와 죄악의 표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적자 기업이라는 말은 곧 망할 위기에 처한 집단이라는 낙인이 되고, 모든 기관은 적자에 대해 변명하고 대책을 강구해서 어떻게든 흑자로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부여받게 된다. 안정된 상태는 꾸준한 흑자라는 표현으로 대치되고, 셈법의 기준에 대해서 성찰해보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이 셈법의 기준이 인간적이길 기대하는가?
회계의 언어였던 적자는 부도덕, 무능력, 안일함과 같은 윤리적 의미망을 갖춰입고 우리 앞에 등장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잣대가 우리를 판정하고 지적질을 하고 나선게? 생산적이어야 한다, 성장해야 한다, 경쟁 우위를 가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색해야 한다 같은 당위 명령은, 한결같이 우상향하는 그래프를 전제로 세계를 바라본다.
모든 생명체는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한다. 죽음으로 상태가 고정되어버리기 전까지, 생명이란 항상 에너지를 그러모으고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하며 존재하게 된다. 생명을 유지한다는 건 끊임없이 에너지를 사용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죽어서 다른 유기체에게 분해되기 전까지, 생명은 늘 에너지 차원에서는 적자 상태를 유지하는 셈이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생명체일수록 더 많이 먹고, 더 많은 부산물을 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