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떤 것에든 쉽게 빠져들어 사로잡힌다.
소셜 미디어 중독에 대한 위태로운 단면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더니, 얼마되지 않아 우리는 AI 챗봇과의 대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소식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그저 외로운 사람들의 도피처라거나 심약한 사람들의 나약한 의존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조짐이 심상치 않다.
소셜 미디어 중독에 대한 위태로운 단면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더니, 얼마되지 않아 우리는 AI 챗봇과의 대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소식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그저 외로운 사람들의 도피처라거나 심약한 사람들의 나약한 의존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조짐이 심상치 않다.
‘중독(Addiction)’이라는 표현말고 달리 이 모습을 설명할 길이 없기에, ‘도박 중독’ ‘카페인 중독’, ‘알콜 중독’ 같은 말이 일상어처럼 쓰인다. 그리고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이 목록은 점점 길어진다. ‘게임 중독’, ‘아드레날린 중독’, ‘소셜 미디어 중독’, ‘AI 중독’ …
주변을 둘러보면,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자신의 뜻대로 조절할수 없는, 일종의 장애 현상에 빠져드는 걸 한탄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 그만큼 문제의식도 많고, 조심하려는 노력도 부족하지 않은데, 어쩌지 못하는 게 ‘중독’ 인것 같다.
우리가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생존 본능부터, 감각의 한계처럼 생명을 가지면 갖게 되는 틀이 있는 것처럼, 유전적으로 규정된 인종, 인지능력, 적응력 같은 물리적 특성이 있고, 그 위에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규정되며 영향을 피할수 없는 힘들이 존재한다.
유혹과 충동에 의해 힘을 발휘하는 ‘중독’도, 운명이니 하는 것처럼 극복해내기 어려운 무게로 주어진 결함이다. 그렇다고 그 결함에 너무 낙담하거나 슬퍼할 필요도 없다. 눈이 안좋아 안경을 쓰는것에 죄의식을 가질 필요 없듯, 무언가에 휘둘리며 나쁜 습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에 사로잡혀서는 안되겠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를 책망하고 벌을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중독도 게으름처럼 영원히 다투고 이겨내야 할 습관 같은 것의 한 종류일 뿐이니까! 매일매일 다투고, 매일매일 패배해도, 또 내일은 이겨내면 되는 것이고, 중독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단호한 의지를 꺾지 말아야 할 뿐이다. 그 강력한 힘을 가벼이 볼 일도, 그저 의지만으로 극복가능한 것처럼 여겨도 안될 일이지만, 습관이 무섭다는 것처럼 중독이 나를 지배하고 휘두르도록 방치하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