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곤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직장 동료와 술을 한잔 마시며 몽롱함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데 열중할 수도 있고, 자신의 삶의 일부를 이루는 무언가를 위 해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할 수도 있다.

잠에 빠져들면서 그는 자신의 하루를 무 의식적으로 정리하게 된다. 그다지 논리적이지는 않겠지만, '꿈'이라는 형식으 로 얼개를 이루는 삶의 이야기는 거의 한 부분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수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과 끊임없이 이야기 를 나눈다.

자신이 겪었던 일상의 이야기,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 수 많은 매 체를 통해 귀동냥을 한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옮겨 다니는 동안, 있었던 사실들은 개개인의 눈을 통해 보고자 했던 부분이 걸러져서 조명을 받는다. 그리고 거기에 이야기꾼의 양념이 더해진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듣고 싶은 부분만 들을 뿐인 사람들을 건너다니며,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다른 이야기로 탄생하게 된다. 소문이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의 두꺼운 퇴적층에서 '이 야기'가 탄생한다.
born of the modern folktale
Photo by Nong / Unsplash

악의 적인 농담, 별 생각없이 덧칠된 뒷담화, 그럴듯한 추측 이 더해진 '카더라' 통신까지... 그 소소한 이야기의 침전물 속에서 현대식 민담 이 탄생하고, 탁월한 이야기꾼의 손을 거쳐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꽃을 피우는 '이야기'들이 탄생한다.

새로운 미디어 도구는 현대판 민담(modern folktale)을 매 일매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야기에 사실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사람들은 자유로와지고 싶어 한다. 이야기는 사람들의 본능이다. 인쇄술이 소설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면, 인터넷은 새로운 이야기 형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과 영상이 더해진 수 많은 이야기들이 매일 매일 사람들 사이를 떠돌아 다닌다. 그 이야기들이 형식적 체계를 어떻게 갖추어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전 시대의 이야기법을 뿌리로 하여 새로운 이야기법이 탄생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전범을 보여주는 형식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이 글을 쓰며 그저 '이야기'라고 부르는 까닭은, 어떠한 형식적 체계도 자리 잡은 게 없기 때문이다. 소설에 뿌리를 둔 이야기법을 빌려오긴 했지만, 인물, 사건, 배경이라는 전통적인 내러티브의 구조는 활개치는 상상을 가로막는 불편한 틀거 리로 여겨진다.

thread of stories
Photo by Allison Batley / Unsplash

이 이야기에는 어떤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구태여 흉내내려는 의도도 없지만, 이야기를 풀어놓는 주체로서의 인물은 또렷하게 상정되지 않는다. 그저 보이는 데로 이야기하고, 느끼는 데로 상상을 더하며, 제멋대로 구미를 당기는 이야기를 엮어내려 한다. 구태여 '주제'라는 것을 찾고자 한다면, 이 이야기는 쓰레기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손에 잡을 수 있는 '의미의 덩어리'를 만들려는 의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마도 생각이라기 보다는 느낌일지도 모른다. 딱히 무어라 얘기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관통하고 공감하게 되는 수 많은 파편들 :

감동, 아픔, 미묘한 불안, 혼란스러움, 환희, 통찰, 불평, 비난, 고마움, 유대감, 고독, 사랑, 증오, 실망, 희망, 꿈, 좌절, 고통, 성취감, 동질감, 안타까움, 질투, 슬 픔, 모욕, 따듯함, 충만함, 나른함, 죽음, 소멸, 생명, 체온...

그 이야기들을 담으려는 것 뿐이다.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고, 그 중에 얼 마간은 주워들은 것일테고, 또 많은 부분은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즐거울 수도, 불쾌할 수도, 가슴이 따듯해질 수도, 분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쏟아버리고 싶은 배설물처럼 한 사람의 영혼에 차올랐던 이야기들이 세상에 던져지는 것 뿐이다. 잘 숙성되어 누군가와 스스럼 없이 나눌만한 것들도 있을테고, 혼자 주절거리고 흘려버리는 편이 더 나았을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판단은 읽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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