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진지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만, 그의 과도한 진지함은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의 아픔은 그에게 다가갈수록 견디기 힘들고, 한 발짝씩 물 러갈수록 그의 모습은 우스워진다. 누가 그리 하라고 하였던가? 아무도 그에게 그리 하라 하지 않았건만, 그는 주변에서 다가오는 온갖 신호들에 대해 진지하고 성실하려 한다.

그의 노력이 애처로울수록 그는 힘들어하지만, 약간만 거리 를 두고 바라보면 그는 어수룩하고 이용해먹기 딱 좋은 '헛똑똑이'이다. 그가 부여하는 과도한 의미부여는 피해망상에 가깝고, 그가 지키려 하는 불굴의 신념은 허황된 공상에 가깝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이 남자를 희극의 무대 위에 올려놓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상상력과 기지로 넘치는 이 남자의 세계는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의 비통한 신음이 재미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는 그의 처지가 안쓰럽다. 그렇다고 그와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의 과도한 진지함이 늘 부담스럽다. 하지만 웃음을 잃어버린 그의 삶이 위태로워 보인다. 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점점 생각이 많아진다. 그 의 행동은 진지하고, 성실하고, 엄격하지만 … '안전한 거리'를 덕목으로 삼고 있는 이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그는 과대망상증 환자이다. 그 만큼 만만한 비웃음거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문제는 그 비웃음에 동참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의 섬세하고 결 고운 마음이 마모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도무지 이 시대의 '썩소'라는 것에 동참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 인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 그 속에 뛰어드는 순간, 그와 마찬가지로 이 야기기는 읽는 사람과 단절되어버린 '과대망상증 환자의 일기'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전하는 자로서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때때로 고민이 된다. 그 고민 속에서 세 번째 이야기를 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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